[펌]불패의 신화 - sceing

Interest/Scrap 2006/01/05 18:31
황우석사태가 다시 이 싸이트로 돌아오게 만드는 군요.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써 어디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고 해서...

한국 과학기술계가 가진 가장 큰 비밀이 뭘까요?
여러가지 중에서 아마도 "실패하는 연구가 없다"라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부를 자금원으로 하는 연구들은 특히 그렇지요.
여기에 방문하시는 분들중에 혹시 한국에서 정부지원을 받는 연구중에서
"실패한 연구"에 대해 들어보신분 계신가요?

한 십년정도 정부돈을 받아서 연구를 진행하는 처지에서
그런 사례를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참 대단한 나라지 않습니까?
착수하는 연구마다 엄청난 성과를 보여주며(세계 최초, 최대, 혹은 획기적 발명등...)
성공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어디 또 있을까요?

더 대단한건, 이렇게 매년 엄청난 수의 연구가 발주되고
연구가 획기적인 성공을 거둠에도 불구하고
연구 현장에 있는 연구원들은 신이나질 않는다는 겁니다.
자랑스럽지도 않구요. 성공 100%의 실체가 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지요.

연구라는 것은, 불확실한것에 대한 탐구라고 볼수 있습니다.
이 불확실한것에 대한 탐구과정이 100% 성공한다????
이 성공신화가 가능한 이유는 두가지중 하나겠지요.
처음부터 확실한것을 탐구하거나(즉 연구할 필요가 없거나, 이미 개발된 것이거나)
아니면 성공자체에 대한 사기거나(황우석 사건이 대표적일라나요)

뭐 예전에 특정 분야에서는 외국제품에 상표만 지워서
개발제품으로 납품해도 통했다는 이야기가 있는걸 봐서는
그래도 과거보다 좀 연구풍토가 개선되었다고 보아야 하겠지만
이보다 조금더 세련된 연구성과 조작하기가 아직도 많다고 봐야 겠지요.

그렇다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연구원들의 양심개선을 하자고 하면 그건 황당한 이야기겠지요.
100% 성공하는 연구성과가 발생하는 이유는 따로 있으니까요.
한국에서 실패한 연구자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최소한 정부로부터 펀드를 받기는 글렀다고 보아야지요.
어떤 연구에 100억을 받아 뭔가를 개발하거나, 특정현상을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했다면
연구개발 성과는 정확하게 (연구 시작전에 작성한) 연구계획서와 일치해야 합니다.
계획대비를 초월하는 성과는 가능하지만, 이에 대한 미 달성은 용서가 않됩니다.

실패한 연구는 무능력과 게으름, 혹은 사기, 공금횡령과 동의어지 결코 성실한 연구와는 연결되지 않습니다.
실패한 연구에 펀딩을 한 공무원과 부서는 감사대상이지 결코 효율적인 국세집행이 될 수 없습니다.
실패한 연구와 연구자는 연구비를 펀딩한 공무원과 담당부서의 짐이며, 혹덩어리 일 뿐입니다.
실패한 연구자들이 다시는 펀드를 받지 못하는 이유지요.
자신들을 감사원 감사 대상이 되게 만드는 연구자들에게 다시 연구비를 줄 공무원들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연구자들도 생활인입니다. 집에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고, 자신들의 입에 풀칠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애초부터 실패할 연구는 하지 않거나, 연구성과에 대한 조작이 있을 수 밖에 없지요.
(요즘 저희 연구팀은 이 관행에 역행해서, 연구 실패를 만들어서 아주 박살이 나고 있는 중입니다만...)

하지만 실패한 연구는 소중합니다. 연구는 불확실한 것들에 대한 탐구입니다. 실패한 연구는 최종 연구성과를 얻는데는 실패했는지 모르지만, 그 외에 여러가지 부수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최소한 어떤 현상을 연구함에 있어서 그 연구자들이 시도했던 방향이 옳지 않음만을 밝힐 수 있다면, 향후에 타 연구자들의 연구진행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똑같은 실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연구는 99개의 실패끝에 한개의 성공을 얻는것이 보다 자연스러운 것일 겁니다. 하지만 승자만을 기억하는 한국사회에서는 99명의 bad guys와 1명의 good guy로만 기억될 뿐이지요. Bad guys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지요.

전혀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성이라곤 없는 공무원 잡단이 칼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정확한 연구성과에 대한 평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일겁니다. 이런 현실이 작금의 한국 과학기술계를 만들어 놓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런 시스템에 어쩌면 가장 잘 적응했던 인물이 황우석이었고, 이러한 불패의 신화가 만들어낸 허상이 또 얼마나 황당한 것 인지를 보여준 아주 좋은 예기도 하구요.

뭐 이런 상황이 왔다고 해서, 우리의 공무원 집단이 자신들의 예산 집행권을 내 놓을라고 할까요? 어림없겠지요. 박사위에 주사를 만들어내는 메카니즘이 바로 그건데요. 하지만 공무원 집단이 예산 집행권을 가진 이상 황우석 사태는 크건 작건 간에 되풀이 될 겁니다. 한국에서 연구성과 100% 성공의 신화도 깨지지 않을 거구요. 연구원들이 느끼는 좌절감이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도 너무나 당연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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