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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의 생각을 정리하기 전..좀더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
나와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고 싶어. 구굴링중이다.


인문계 출신자들의 이공계 출신자들에 대한 지독한 오해

오늘 라디오를 듣자니, 남성 진행자(교수)가 말하기를, "대학에서 기술이나 기능만을 가르치지 말고,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윤리성을 갖춘 인물을 양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나, 80% 정도는 과학기술자를 염두에두고 한 말일 것이다.

이 양반의 말은 틀렸다. 과학기술자들이 새로운 발명, 발견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사회를 훨씬 더 평평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과학기술은 사회를 훨씬 더 평평하게 만들어 왔다. 예를 들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계층을 넘어 지식을 전파하였고, 그 결과 민주주의가 탄생했다. 이러한 예는 많이 있다.

어떤 과학자가 어떤 치료법을 만들었다. 그는 분명히 세상의 모든 환자를 위해 만들었을 것이다. (즉 자신의 발명이 세상을 훨씬 평평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치료법에게 상품성을 부여하고, 독점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려는 세력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반드시 존재한다. 그때 과학자는 다시금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다. 자신의 연구를 진척하기 위해서는 연구비를 조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치료법을 그 자본의 세력들에게 팔아먹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자본 세력들은 그 치료법을 독점하여 한없이 이윤을 창출하려 들 것이므로, (인간의 절대적 약점을 잡아 돈을 버는 것은 매우 쉽다.) 돈 없는 환자들은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럴 경우에 사회는 법률을 만들어서, 그러한 파급력이 큰 발명의 경우, 정부가 사들인다든가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일에 과학 기술자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못하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과학 기술자들은 조선시대의 중인 계급이 받던 차별을 여전히 받고 있다.) 그러므로 "과학자의 윤리성" 운운하면서 과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은 조선시대식 발상이다.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 스스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대화하고, 토론하고, 토론의 결과 도출된 합의를 공론화하고 조직화하여 세상을 바꾸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도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지금까지 그들에게는 그러한 교육 과정이 주어지지 않았다. 과학기술자들 자신이 만든 기술을 기업을 경영함으로써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경영학, 경제학, 법학 등을 배울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것도, 한국이 아직도 조선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실례다. 어떤 사람은 그런 과목들은 이미 과목이 개설되어 있으니 교양으로 가서 수강하면 되지 않느냐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상의 과학기술 경영자를 말하는 것이지 상식을 쌓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자연과학대학과 공과대학, 의과대학이 운영하는 MBA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데는 이미 일부 존재하고 있다. 내 말은 전반적인 확산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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